상상으로 지은 호텔: 베트남 혁명가의 딸은 어떻게 크레이지 하우스를 만들었나
달랏에는 투숙할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들을 관광버스가 실어 나르는 호텔이 있다. 사람들은 입장권을 사고 좁은 계단을 오르며, 지붕에서 다른 지붕으로 건너가 사진 찍을 차례를 기다린다. 이곳에서 객실을 예약할 수도 있지만, 많은 이들에게는 거대한 마법의 숲을 닮은 호텔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달랏의 크레이지 하우스: 콘크리트 나무, 탑, 통로. 사진: 크레이지 하우스 공식 웹사이트.
이 콘크리트 숲을 구상한 사람은 베트남 혁명 지도자의 딸이자 모스크바에서 건축을 공부한 당비엣응아(Đặng Việt Nga)다. 그녀는 자신의 집을 항응아 빌라라고 이름 지었다. 방문객들은 다른 이름을 붙였다. Crazy House, ‘미친 집’이었다.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름이어서 그대로 정착했다.

건축 도면 작업 중인 당비엣응아. 출처: Techz.
나무 속에서 보내는 하룻밤
보통 호텔에서 계단은 객실로 가는 수단이다. 이곳에서는 계단 자체가 모험이 된다. 휘어지고 좁아지다가 나무 모양 건물 사이를 잇는 가지로 변한다. 발아래로는 안뜰이 멀어지고, 옆에서는 새로운 줄기가 솟아오르며, 벽에는 비뚤어진 창문이 열린다. 멀리서 보면 거대한 나무 몇 그루가 뿌리와 가지로 한데 엉켰고, 그 속은 텅 빈 듯한 모습이다.

콘크리트 나무 사이의 좁은 계단을 오르는 방문객들. 사진: 필자 개인 소장.
그 빈 공간에는 침대와 욕실, 벽난로를 갖춘 실제 호텔 객실이 들어서 있다. 객실마다 곰, 호랑이, 캥거루, 대나무라는 이름이 있다. 러시아 손님이라면 곰 방에서 익숙한 동물을 쉽게 알아볼 것이다. 시설의 설명에 따르면 곰 방은 러시아와, 대나무 방은 베트남과 연결된다. 낮 시간의 방문객이 돌아가고 나무 사이 통로가 비면, 투숙객은 이 방들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크레이지 하우스의 곰 객실. 사진: 크레이지 하우스 공식 웹사이트.
비엣응아가 상상한 세계는 숲에 그치지 않는다. 바위산을 형상화한 건물 하나에는 입체적인 벽화로 꾸민 해양 공간 ‘고원의 바다’를 만들었다. 아래층에는 무대가 있는데, 집의 공식 안내에 따르면 주인은 친구들과 이곳에서 시를 읽고 차를 마시며 춤을 추었다. 바다 옆에는 에덴 정원과 천국 정원도 생겼다.

고원의 바다: 산호와 천장 그림으로 꾸민 해양 공간. 사진: Crazy House / Người Đô Thị.
에덴 정원에는 다소 불안한 느낌을 주는 형상도 있다. 벽에서 뻗어 나오는 거대한 손과 서로의 몸 위에 올라선 사람들이다. 이 인간 피라미드 꼭대기에는 포도를 곁에 둔 부엉이가 앉아 있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아래쪽 인물들은 노동으로 사회를 떠받치는 사람들을, 부엉이는 가장 좋은 열매를 차지하는 사람들을 나타낸다. 비엣응아는 꽃과 연못 사이에 불공정에 관해 이야기할 자리도 마련했다.

위에서 내려다본 크레이지 하우스 내부의 통로와 유리 지붕. 사진: 필자 개인 소장.
1990년 크레이지 하우스 공사를 시작하면서 그녀는 여러 장의 그림으로 구상을 전달했다. 그림은 자신이 원하는 형태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콘크리트는 비교적 저렴하고 상상 속 형상을 만들기에도 유연한, 적합한 재료였다. 하지만 그림이 아무리 자유로워도 구조적 요구는 남았다. 집은 안정적으로 서 있어야 했고 사람들의 무게도 견뎌야 했다.

크레이지 하우스 건축 기록에 담긴 콘크리트 나무 작업. 사진: 크레이지 하우스 공식 웹사이트.
호찌민에게 받은 선물
동굴과 나무, 환상적인 통로 사이에는 건축가의 부모를 기리는 방이 있다. 가족사진과 책, 기념품이 보관되어 있다. 그 위로 거미줄 모양 유리 지붕이 놓여 있고, 유리 너머로 하늘이 보인다. 비엣응아는 자신이 상상한 건축 안에 가족을 위한 추모 공간까지 마련했다.

크레이지 하우스에 있는 비엣응아 부모의 추모 공간. 사진: 크레이지 하우스 공식 웹사이트.
아버지의 본명은 당쑤언쿠(Đặng Xuân Khu)였지만, 역사에는 혁명 활동명인 쯔엉찐(Trường Chinh)으로 남았다. 그는 호찌민의 동지이자 공산당 총비서였다.

비엣응아의 아버지이자 베트남 혁명 지도자 쯔엉찐. 사진: 베트남 문화체육관광부.
비엣응아는 1940년 남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지하 활동을 하는 동안 어머니, 친조부모와 함께 살았다. 아버지와의 첫 만남은 평생 기억에 남았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다섯 살이었다. 1945년 가족과 하노이로 옮긴 뒤, 이후에는 비엣박 저항 근거지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일곱 살 때 호찌민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훗날 그에게서 아름다운 파란 누빔 재킷을 선물받았다. 조금 컸지만 비엣응아는 그래도 입고 대문 앞으로 나가 자랑했다. 얼마 뒤 아버지는 열두 살쯤 된 소년 연락원 하이에게 재킷을 주자고 제안했다. 그 아이에게는 꼭 맞을 것이었다.
비엣응아는 선물과 헤어지는 것이 무척 아쉬웠지만 아버지 말을 따랐다. 하이는 처음에는 받기를 주저했고, 아버지가 소년을 설득해야 했다.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그녀의 기억에는 재킷의 색깔, 그것을 가졌던 기쁨, 그렇게 아름다운 물건을 내주어야 했던 속상함이 남아 있었다.

호찌민, 친구들과 함께한 비엣응아(왼쪽). 출처에 촬영 날짜는 없다. 사진: Công an Nhân dân.
모스크바에서 자신만의 동화 속으로
비엣응아는 아직 학생이던 시절 소련으로 갔다. 이후 모스크바에서 건축을 공부해 1965년 졸업했고, 몇 년 뒤 학위논문을 쓰기 위해 다시 돌아갔다. 1972년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에는 건설 및 문화 부처와 관련된 설계 연구기관에서 일했다.

소련에서 호찌민, 레주언, 친구들과 함께한 비엣응아(왼쪽에서 두 번째). 1961년. 사진: Công an Nhân dân.
크레이지 하우스의 기묘한 작은 탑들만 본 사람에게는 의외일 수 있다. 이 건물의 창조자에게는 오랜 전문 교육과 국가 프로젝트 경험이 있었다. 인터뷰에서 그녀는 그런 업무에는 상상력을 펼칠 여지가 적었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집에서는 상상력을 마음껏 펼치고 싶었다.
여행자들의 크레이지 하우스 회상에는 러시아를 떠올리게 하는 또 하나의 세부가 등장한다. 차고에 세워진 지굴리 자동차다. 방문객들이 이를 발견하고 글로 남겼다. 콘크리트 뿌리와 거대한 거미줄 사이에서 평범한 소련 자동차는 달랏의 빌라들 사이에 서 있는 이 건물만큼이나 뜻밖으로 보인다. 사실 베트남에는 해안 도시 붕따우에 소련식 5층 아파트들이 있는 러시아인 거주 구역까지 남아 있다.

크레이지 하우스 차고에 있는 지굴리 자동차. 사진: 필자 개인 소장.
동화 같은 통로에서는 숲속 오두막이나 마법에 걸린 성을 떠올릴 수 있다. 비엣응아는 젊은 시절의 상당 부분을 소련에서 보냈지만, 자신의 구상은 무엇보다 자연과의 관계로 설명했다. 인간이 너무 많은 것을 파괴했기에 사람들을 자연 세계에 더 가까이 데려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람을 나무 안에 살게 하는 것은 그 뜻을 문자 그대로 실현하는 그녀의 건축적 방법이었다.

크레이지 하우스 건물 사이의 계단과 통로. 사진: 필자 개인 소장.
하이힐을 신고 가지 위를 걷다
1983년 비엣응아는 어린 아들과 함께 달랏으로 이주했다. 이 산악 휴양지가 형성된 데에는 알렉상드르 예르생의 제안이 큰 역할을 했다. 그녀는 앞선 출장 때부터 이 도시의 서늘한 기후와 녹음, 사람들을 좋아했다. 몇 년 뒤 이곳에서 자신의 집을 짓기 시작했다.

크레이지 하우스 위쪽 통로에서 바라본 달랏. 사진: 필자 개인 소장.
타인니엔(Thanh Niên)의 보도에 따르면, 처음에는 약 1천 제곱미터의 부지를 빌렸고 건축비는 은행 대출로 마련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객들이 찾아왔다. 다른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비엣응아는 연못과 버섯 몇 개만 완성됐을 때부터 사람들이 집에 관심을 보였다고 회상했다. 그때 입장료를 받아 그 돈으로 공사를 이어갈 생각을 했다.

크레이지 하우스의 호랑이 객실. 사진: 크레이지 하우스 공식 웹사이트.
집과 함께 그녀의 삶도 변했다. 2022년에는 공사가 이미 30년 넘게 이어지고 있었다. 타인니엔 기자가 만난 82세의 주인은 하이힐 차림으로 나선형 계단을 활기차게 오르내리며 인부들을 지휘했다. 옷차림을 세심하게 고르고 긴 드레스와 모자, 스카프를 즐겼다. 음악과 춤을 좋아했다.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느냐는 질문에는 일을 하면 더 건강해지는 기분이라고 답했다.

집 안 계단에 선 당비엣응아. 2022년에 게재된 사진. 사진: Lê Vân / Thanh Niên.

크레이지 하우스 공사 현장의 비엣응아. 2022년 타인니엔 보도. 사진: Lê Vân / Thanh Niên.
그 무렵 아들은 시설의 사업 운영을 맡았고, 비엣응아는 계속 새로운 공간을 구상하며 보수 작업을 살폈다. 그녀는 돈이 수중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고 했다. 생기는 대로 건축에 쓴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공사에도 한계가 찾아왔다. 빈 땅이 다 사라진 것이다. 새로운 구상은 위를 향할 수밖에 없었다.

크레이지 하우스 무도장의 비엣응아. 2022년에 게재된 사진. 사진: Lê Vân / Thanh Niên.
철거될 뻔한 집
그에 앞서 비엣응아는 오랜 불확실성을 겪었다. 2008년 2월 브이엔익스프레스(VnExpress)는 럼동성 당국이 마침내 그녀에게 건물 소유권 증명서를 발급했다고 보도했다. 착공 이후 18년이 흘렀고, 그동안 집은 줄곧 철거 위협을 받았다. 이전까지 당국은 설계안을 인정하거나 소유권을 등록해 주려 하지 않았다.
집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는 현실적인 근거가 있었다. 달랏에서는 건축가 르쭉프엉(Lữ Trúc Phương)의 또 다른 실험적 건물 ‘백 개의 지붕이 있는 집’이 이미 철거된 상태였다. 당국은 가벼운 자재로 지은 건물의 화재 안전 문제를 이유로 들었다. 크레이지 하우스는 다른 방식으로 지어졌지만, 그 사례는 방문객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건물의 존속이 보장되지는 않음을 보여 주었다.
2009년 타인니엔 인터뷰에서 비엣응아는 한때 상황이 너무 심각해져 중앙의 한 고위 지도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써야 했다고 말했다. 그녀에 따르면 그 일이 집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보도에는 편지를 받은 사람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공식 인정에는 주인의 구상과 잘 맞는 듯한 설명이 뒤따랐다. 당국은 크레이지 하우스를 독특한 실험 예술 작품으로 보았다. 집은 살아남았고 서류를 받았으며 계속 자라났다.

손으로 빚어 만드는 콘크리트 뿌리와 나무줄기. 사진: 크레이지 하우스 공식 웹사이트.
10만 명의 방문객과 ‘유치원 만들기 작품’
오늘날 크레이지 하우스는 좋은 사진 촬영 장소마다 줄이 생길 만큼 많은 사람이 찾는다. 베트남넷(VietNamNet)이 인용한 추산에 따르면 연간 방문객은 약 10만 명이다. 이곳은 여전히 관광 명소이자 호텔이며, 창조자의 가족이 사는 집이다. 비엣응아는 2026년에 86세가 된다.

거대한 붉은 손이 있는 크레이지 하우스의 환상적인 외벽. 사진: 필자 개인 소장.
하지만 성공했다고 해서 그녀의 작품에 대한 평가가 하나로 모인 것은 아니다. 공개된 후기 중 한 여성 방문객은 집을 ‘나쁜 취향’이라고 부르며 ‘유치원 졸업생의 만들기 작품’에 비유한다. 조형물도 계단도 주변 인파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열광적인 묘사들 사이에는 이런 반응도 존재한다.
비슷한 말은 지금의 여행 플랫폼이 등장하기 훨씬 전에도 들렸다. 비엣응아는 이미 2006년에 자신의 독특한 해법들이 복잡하다는 비판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편 방문객들은 방명록에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해 주어 고맙다는 글을 남기고 있었다.
2006년 인터뷰에서는 이렇게 낯선 건물들 사이에서 외롭지 않느냐는 질문도 받았다. 그녀는 슬퍼할 시간이 없다고 답했다. 2010년까지 빌라를 완성할 수 있도록 손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했던 시한이 지난 뒤에도 비엣응아는 계속 지었다. 해양 공간과 정원, 새로운 통로가 생겼다. 훗날 아들은 크레이지 하우스가 아마 영원히 완성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살아 있는 생물처럼 변하기 때문이다. 2026년이면 집은 벌써 36년이 되었지만, 방문객들은 그녀가 또 무엇을 구상했는지 보려고 여전히 콘크리트 가지 위로 올라간다.

크레이지 하우스의 계단과 콘크리트 나무 사이에서. 사진: 필자 개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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